
예전에 괴산에 있는 '산막이옛길'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기 위해 맛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식당 문에 걸린 글을 보고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와 손님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인 000 올림"
식당 사장은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기에 손님에게 사과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과 문구까지 걸어 놓은 것을 보고 "이런 정직한 식당이라면 믿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나 때문입니다. 나로 인해 이런 일이 발생하여 죄송합니다."라는 소리를 들어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본인의 실수와 잘못을 감추는 시대입니다. 문제를 만들어 놓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시대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공동체에 타격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수한 것은 죄가 아닌데 실수한 것에 사과하지 않고 은폐하는 것이 죄입니다. 나로 인해 공동체에 큰 타격을 받았는데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공의와 정의의 깃발을 흔들면서 진리를 외치는 소리가 전국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사과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진리의 깃발을 흔드는 이들을 매도하는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필자는 2018년도에 임종을 눈앞에 둔 권사님을 위해 기도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기도 후에 남편께서 아내인 권사님에게 사과하셨습니다. "나 하나 바라보고 시집왔는데 평생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오." 남편의 사과를 받은 권사님은 "아니에요. 저는 당신을 만나 살아온 게 행복했어요. 당신이 내 남편이어서 감사했어요. 아내 역할 제대로 못 해 드려 죄송했어요.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해 애들한테 미안해요" 사과를 나눈 두 분은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습니다.
진정성 있는 사과는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사랑이 담긴 사과는 보이지 않는 담도 허물 수 있습니다.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야"
이제는 이런 소리를 멈추고 "이해심이 부족한 나 때문입니다. 나로 인해 모두가 힘들게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한다면 문제의 원인은 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미안한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진정 부끄러운 것은 사과할 줄 모르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속히 "나 때문입니다."라는 진심이 담긴 소리가 들려오길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