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광명 시민광장’ 동생들과 충남 태안 학암포로 1박 2일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상하게도 그 짧은 여정이 며칠은 다녀온 듯한 깊은 충만함으로 남았습니다. 오가는 내내 차 안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학암포에 도착해서는 함께 텐트를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시민광장’이라는 이름 아래 맺은 인연은 참 묘합니다. 평소에는 각자의 삶에 바빠 묻혀 살다가도, 어느 순간 이렇게 다시 만나면 처음 함께 열정을 불태웠던 그 시절의 다정하고 순수했던 시간으로 자연스레 되돌아가니 말입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바닷물이 저 멀리 빠져나간 서해의 광활한 갯벌 위를 한참 걸었습니다. 발아래 젖은 모래가 부드럽게 꺼지고, 저 멀리 붉은 노을이 물드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마음까지 덩달아 넓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어둠이 내릴 때쯤, 준비해 간 음식도 좋았지만 때마침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찾아준 후배의 방문이 무엇보다 반가웠습니다. 거기에 50도가 넘는 중국 명주 분주(汾酒) 한 잔이 더해지니, 우리의 흥겨운 밤은 금세 무르익었습니다. 독한 술은 종종 사람의 혀를 풀어놓고, 가슴속 깊은 곳에 묵혀두었던 오래된 생각들을 꺼내놓게 만듭니다.
그날 술자리에서 자연스레 화제가 된 것은 한 동생이 입고 온 티셔츠의 문구였습니다.
“Break the frame.” (틀을 깨라)
그 세 단어를 가만히 응시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논어(論語)』 「옹야(雍也)」 편에 나오는 공자님의 한 구절이 묘하게 겹쳐 지나갔습니다. 제자 염구(冉求)가 소극적인 태도로 변명을 늘어놓던 장면입니다.
“선생님의 도(道)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 힘이 부족합니다(力不足也).”
그러자 공자께서는 정문일침(頂門一針)의 꾸짖음을 내리셨습니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하다가 중간에 쓰러져 그만두는 것이다. 지금 너는 아예 스스로 한계를 그어놓고 있구나(今女畫).”
여기서 ‘획(畫)’은 선을 긋는다는 뜻입니다. 공자께서 노여워하신 것은 염구의 능력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
나는 여기까지야”, “세상은 원래 그래”, “어차피 바뀌지 않아”라며 자기 삶의 울타리를 먼저 쳐버리는 유약한 태도를 경계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종종 눈앞의 높은 벽보다, 자기 안의 견고한 프레임에 먼저 갇히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Break the frame’이라는 서구의 문구는 제법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그것은 단순히 기존의 규칙을 깨부수자는 치기 어린 반항이 아닙니다. 익숙한 생각, 오래된 두려움, 스스로 그어놓은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패러다임과 가능성으로 나아가라는 혁신의 요청에 가깝습니다. 틀을 깨고 나오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권장해야 마땅한 삶의 태도입니다.
술잔을 계속 비우다 보니 한편으로 서글프게 대두되는 생각 하나가 있었습니다. 틀을 깨는 것과 선을 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요즘 정치권, 특히 여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행태를 보면 씁쓸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편을 가르고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충성 경쟁을 벌이는 자들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그들을 명팔이 구직자라고 비아냥대기도 합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이 땅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고, 서슬 퍼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온갖 핍박을 받으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초석을 다진 선배들을 향해 거침없는 비난과 욕설을 퍼붓고 있습니다.
정치는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습니다. 노선이 다를 수도 있고, 세대가 바뀌며 새로운 관점이 등장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낡은 프레임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주장도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프레임을 깨는 일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금도까지 깨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를 말하려는 자라면, 먼저 지나온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염치를 가져야 합니다. 어제의 희생 위에서 오늘의 풍요를 누리는 자들이 그 희생 자체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순간,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오만이며, 개혁이 아니라 망동(妄動)이 될 뿐입니다.
공자가 말한 ‘금녀획(今女畫)’은 스스로 만든 영혼의 한계를 깨고 대도(大道)를 향해 나아가라는 격려였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상식의 선까지 지워버리라는 면죄부가 아니었습니다.
학암포의 밤바다를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밀물이 빠져나가며 드러난 갯벌 길은 아득하게 멀리까지 이어졌지만, 바다는 결코 자기가 지켜야 할 경계를 잃지 않았습니다. 들어올 때와 물러설 때를 정확히 알고 선을 지키기에, 바다는 그토록 깊고 넓은 품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과 정치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가두는 완고하고 낡은 틀은 과감히 깨부수되, 공동체가 쌓아 올린 가치와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끝까지 지켜낼 줄 아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짜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자, 공자께서 평생을 두고 강조하셨던 참된 배움의 자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