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변호사 한병철의 글로벌 법률 가이드18] - 외국인도 보증금 지킬 권리는 똑같다

외국인 임차인을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과 보증금 반환 가이드

대항력 확보부터 임차권등기명령까지 단계별 보증금 회수 대책

이사 전 권리 확보와 분쟁 조정으로 지키는 외국인 임차보증금

[부산 변호사 한병철의 글로벌 법률 가이드18] 외국인도 보증금 지킬 권리는 똑같다

 

◇ 국적이 달라도 계약과 법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삿짐센터 예약은 이미 끝났다. 비행기 표도 끊었다. 그런데 집주인의 문자는 짧다. "다음 세입자 구해지면 그때 줄게요." 계약이 끝난 지는 이미 여러 날이 지났다. 통장에는 보증금이 들어올 기미가 없다.

 

한국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외국인이라면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유학생도, 외국인 근로자도, 결혼이민자도 다르지 않다. 계약이 끝났는데 집주인이 말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원상복구 비용이라며 갑자기 큰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체류기간이 얼마 안 남은 걸 알고 협상에서 밀어붙이는 경우도 실제로 있다.

 

이 글은 그런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룬다. 한국의 임대차 제도가 외국인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짚는다. 소송과 협의 중 무엇이 현실적인지도 다룬다. 미국, 일본, 중국, 베트남, 러시아는 같은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도 함께 짚는다. 

 

참고로 이 글은 거주용 주택 임대차를 기준으로 한다. 상가(영업용) 임대차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따로 적용되며 권리금 등 세부 규정이 다르다.

 

◇ 왜 유독 외국인 임차인에게 이런 일이 반복될까

한 병 철 변호사

2025년 기준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은 280만 명을 넘어섰다. 그만큼 임대차 계약을 맺는 외국인도 크게 늘었다. 그런데 외국인을 노린 사기 범죄 신고도 함께 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그 수는 몇 배로 뛰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언어 장벽 때문에 계약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비자 때문에 신고를 미루는 사람도 많다.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냥 참는 사람도 많다. 무엇보다 "이 사람은 소송까지 가지 못할 것"이라고 얕보는 집주인이 실제로 있다.

 

여기서 많은 외국인이 착각하는 지점이 하나 있다. "나는 외국인이니까 한국인보다 법의 보호를 덜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생각은 사실과 다르다. 다만 사건 유형과 체류자격에 따라 대응 순서는 달라질 수 있다.

 

◇ 법은 국적을 묻지 않는다, 다만 등록 방법이 다를 뿐이다

한국의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를 보호한다. 핵심 장치는 두 가지다. 하나는 대항력(집주인이 바뀌어도 계속 살 수 있는 힘)이다. 또 하나는 우선변제권(경매에 넘어가도 다른 채권자보다 먼저 보증금을 받을 권리)이다.

 

한국인은 이 권리를 얻으려면 전입신고(이사한 주소를 관청에 신고하는 절차)를 한다. 외국인은 다르다. 전입신고 대신 외국인등록이나 체류지 변경신고를 하면 된다. 그러면 전입신고와 똑같은 효력이 생긴다. 국적을 이유로 이 효력이 약해지지 않는다.

 

여기에 확정일자까지 받아두면 보호 장치는 완성된다. 확정일자란 계약서에 관청이 날짜 도장을 찍어주는 절차다. 우선변제권을 얻는 핵심 요건이다. 확정일자도 국적과 무관하다. 동주민센터나 등기소, 인터넷등기소에서 누구나 받을 수 있다.

 

핵심은 외국인이라서 보호를 덜 받는 게 아니다. 등록을 제때 했는지가 핵심이다. 전입(체류지 변경) 신고를 한 다음 날 0시부터 대항력이 생긴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집주인이 신고 당일에 몰래 대출을 받아 근저당을 설정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등기부등본은 이사 전후로 꼭 확인해야 한다.

 

◇ 계약을 지키는 것도, 집을 돌려주는 것도 기준이 있다

2020년부터 이른바 임대차 3법이 시행되고 있다. 세입자는 계약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 사이에 갱신을 요구할 수 있다. 집주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 이 권리는 1회, 2년 추가로 쓸 수 있다. 갱신할 때 임대료는 5%까지만 올릴 수 있다. 2024년 헌법재판소도 이 제도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국적에 따른 예외는 없다.

 

이사 나갈 때 가장 자주 다투는 부분은 원상복구(임차인이 집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을 의무) 비용이다. 여기서 많이 착각하는 지점이 있다. "새것처럼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는 다르다.

 

법원은 오랫동안 같은 원칙을 지켜 왔다. '통상의 손모(자연스러운 마모)'는 임차인 책임이 아니다. 햇빛에 바랜 벽지, 가구 자국, 못 자국 정도는 임차인 부담이 아니다. 반면 고의로 낸 흠집, 낙서, 흡연으로 인한 얼룩, 방치로 생긴 곰팡이는 임차인 부담이다.

 

 참고로 LH는 시설물의 경과연수에 따라 임차인 부담액을 줄여주는 계산 방식을 참고자료로 제공한다. 다만 이는 참고용일 뿐, 모든 집에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핵심은 원상복구가 얼마나 억울하게 느껴지느냐가 아니다. 입주 당시 상태를 사진으로 남겨뒀는지가 핵심이다. 계약 전후로 집 상태를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두면, 나중에 다툼이 생겨도 근거가 확실해진다.

 

◇ 소송이 정답이 아니라 순서가 정답이다

"소송을 가야 하나, 협의를 해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답은 이렇다. 대부분 소송은 마지막 수단이다. 순서를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첫 단계는 협의다. 다만 말로만 하지 않는다. 요구 사항과 기한을 문자나 이메일로 남긴다. 이렇게 남긴 기록은 나중에 조정이나 소송으로 넘어가도 그대로 증거가 된다. 감정적으로 "이 정도만 받고 끝내자"며 성급하게 각서를 쓰는 것은 피해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내용증명(나중에 증거로 남는 공식 우편)이다.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다는 사실 자체를 기록으로 남기는 절차다.

 

세 번째는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다. 대한법률구조공단, LH, 한국부동산원 등 전국 여러 곳에 설치돼 있다. 변호사, 판사 출신, 공인중개사 등 전문가가 조정을 진행한다. 

 

수수료는 1만 원에서 10만 원 수준이다. 소액임차인은 면제되기도 한다. 평균 60일 안에 끝난다. 양쪽이 조정안을 받아들이면 판결과 비슷한 효력이 생긴다. 국적은 이용 자격과 관계없다.

 

네 번째는 지급명령(법원이 서류만으로 지급을 명령하는 간이 절차)이다. 상대방이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된다. 이의를 제기하면 정식 소송으로 넘어간다.

 

금액이 3천만 원 이하라면 소액사건심판을 이용할 수 있다. 일반 소송보다 훨씬 간단하고 빠르다. 변호사 없이 혼자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많이 놓치는 절차가 있다. 바로 임차권등기명령(이사를 나가도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그대로 유지시켜주는 절차)이다. 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 이사부터 나가면 위험하다. 어렵게 갖춰둔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 등기가 실제로 끝나기까지 보통 1~2주가 걸린다. 이사 날짜가 정해져 있다면 임차권등기명령부터 신청해야 한다.

 

집주인이 재산을 빼돌릴 조짐이 보인다면 가압류(재산을 임시로 묶어두는 절차)도 검토해야 한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해 뒀다면 방법이 하나 더 있다. HUG, 즉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운영하는 보증보험이다. 집주인을 직접 쫓아다니는 대신 HUG에 먼저 청구하면 된다. 이 보증보험은 개인, 법인은 물론 외국인도 가입할 수 있다.

 

핵심은 소송이냐 협의냐가 아니다. 이사 전에 권리부터 지켜뒀는지가 핵심이다. 순서를 지키면 소송까지 가지 않고 끝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 다른 나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미국은 주(州)마다 법이 다르다. 보증금 반환 기한을 법으로 못 박아 둔다. 하와이는 14일, 인디애나는 45일 정도다. 집주인은 공제 내역을 항목별로 적어 통지해야 한다. 기한을 어기거나 근거 없이 공제하면 어떻게 될까. 주에 따라 공제액의 2~3배를 배상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소액 분쟁은 한국의 소액사건심판과 비슷한 소액재판으로 해결한다.

 

일본은 국토교통성이 만든 원상회복 가이드라인이 기준이 된다. 통상의 사용으로 인한 손모나 노후화(경년열화)는 집주인 부담이다. 고의·과실에 의한 손상은 세입자 부담이다. 이 원칙은 한국 판례와 매우 비슷하다. 다만 일본은 이 원칙을 2020년 개정 민법에 아예 명문화했다. 남은 사용연수에 따라 세입자 부담액을 깎아주는 계산 방식까지 정부가 직접 제시한다는 점이 다르다.

 

중국은 민법전이 임대차를 다룬다. 보증금(押金)은 집주인의 소유가 아니다. 계약 이행을 담보하는 성격으로 본다. 다만 중국에는 한국의 대항력·우선변제권 같은 장치가 없다. 등기부에 연동된 우선순위 보전 제도 자체가 없는 것이다. 분쟁이 생기면 협상을 먼저 한다. 그다음 인민조정위원회(지역 단위의 민간 조정 기구)를 거친다. 그래도 안 되면 중재나 소송으로 넘어간다.

 

베트남은 주택법과 민법이 임대차를 규율한다. 국제 부동산 평가기관은 베트남의 임대차 관행이 다소 임대인에게 유리한 편이라고 본다. 그만큼 계약서를 꼼꼼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 증빙 자료를 남기는 것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분쟁 해결은 협상과 조정이 먼저다. 필요하면 중재나 소송으로 넘어간다.

 

러시아는 보증금 액수에 상한이 없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자유롭게 정한다. 분쟁은 대체로 협상이나 법원을 통해서만 해결된다. 절차는 느린 편이다. 러시아에 사는 외국인은 출입국할 때마다 거주 등록을 다시 해야 한다. 이 점도 한국과 다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의 제도는 오히려 촘촘한 편이다. 등기부와 연동된 대항력·우선변제권이 있다. 전담 조정위원회도 있다. 국가가 보증하는 반환보증 보험도 있다. 이 세 겹을 모두 갖춘 나라는 많지 않다. 문제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 제도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문제다.

 

◇ 지금 해야 할 일, 며칠 안에 해야 할 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

오늘 안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임대차계약서, 계좌이체 내역, 집주인과 나눈 문자·카톡 대화를 사진으로 찍어 따로 저장해 둔다. 외국인등록증이나 여권 사본, 확정일자를 받은 서류도 함께 챙긴다. 집 안 상태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 둔다.

 

며칠 안에 해야 할 일도 있다. 내용증명을 발송한다. 이사 날짜가 이미 정해졌다면 임차권등기명령부터 신청한다.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상담을 예약한다. 한국어가 서툴다면 1345 외국인종합안내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20개 언어로 무료 통역과 법률상담을 지원하며, 외국인을 위한 마을변호사 제도로도 연결된다. 

 

결혼이민자라면 다누리콜센터(1577-1366)도 있다. 법무부가 2026년 3월 다국어 표준계약서도 배포했다.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으로 되어 있다.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감정이 앞서 "이 정도만 받고 끝내자"며 그 자리에서 각서에 서명하면 안 된다. 보증금을 못 받은 채로 먼저 이사부터 나가면 안 된다. 통역 없이 애매하게 서류에 서명해서도 안 된다. 집주인에게 소송 계획을 미리 알리는 것도 피해야 한다. 상대가 증거를 없앨 시간을 벌어주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 변호사가 개입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임대차분쟁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증거 정리다. 계약서, 이체 내역, 문자 기록, 확정일자 서류, 원상복구 상태 사진, 신분 서류를 사건에 맞게 정리한다. 통역이 필요한 부분도 미리 짚어준다.

 

둘째는 절차 선택이다. 협의, 조정위원회, 지급명령, 소액사건심판, 임차권등기명령, 가압류 중 사안에 맞는 경로를 고른다. 순서도 함께 판단한다. 체류자격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셋째는 타이밍 판단이다.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하는 단계인지, 증거를 더 모아야 하는 단계인지를 가른다. 특히 이사 시점과 임차권등기명령의 순서는 하루 차이로 결과가 갈릴 수 있다.

 

넷째는 실수 방지다. 상대방에게 미리 알려 증거를 없애게 만드는 실수를 막는다. 감정적으로 불리한 합의서에 서명하는 실수도 막는다. 통역 없이 애매한 진술을 남기는 실수도 막는다.

 

변호사가 개입하면 집주인의 태도부터 달라진다. "어차피 소송 못 갈 것"이라던 계산이 깨진다. 협상 테이블의 무게 자체가 바뀐다.

비자가 얼마 남지 않았어도, 한국어가 서툴러도 임차인의 권리 자체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완벽한 한국어가 아니다. 오늘 남겨두는 사진 한 장과 문자 한 통이다.

 

 

한병철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 변호사

(대한변협 인증 형사전문변호사 · 부동산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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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9.03 18:11 수정 2026.09.0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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