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변호사 한병철의 글로벌 법률 가이드16] 노동 문제, 비자 때문에 참을수록 불리해진다
◇ 국적이 달라도 근로자의 권리는 동일하게 보호된다
월급날 아침, 통장을 확인한다. 입금액이 없다. 사장에게 문자를 보낸다. "곧 준다"는 답만 돌아온다. 다음 달에도 같은 문자가 반복된다.
공장 동료들과 눈빛을 주고받지만 다들 말을 아낀다. 신고하면 비자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다. 그래서 다들 참는 쪽을 택한다.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임금체불, 사업장 변경 거부, 부당한 해고가 있다. 폭언과 폭행까지 유형도 다양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참으면 조용히 넘어간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 왜 유독 외국인에게 가혹한가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대부분 두 가지 제도로 들어온다. 하나는 고용허가제, E-9 비자다. 사업주가 정부 허가를 받아 외국인을 고용하는 제도다. 다른 하나는 방문취업, H-2 비자다.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한 취업 제도다.
E-9 비자는 원칙이 다르다. 처음 계약한 사업장에서 계속 일해야 한다. 자유롭게 옮길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근로자는 약자가 된다. 그만두면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체류자격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생긴다. 일부 사업주는 이 두려움을 안다. 임금을 미루거나 부당한 대우를 해도 "신고 못 할 것"이라 여긴다.
여기에 언어 장벽이 더해진다.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이해 못한 채 서명하는 경우도 있다. 급여명세서의 공제 항목이 정당한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문제가 생겨도 어디에 신고할지 몰라 시간만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 참으면 해결된다는 착각
많은 근로자가 이렇게 생각한다. "미등록 체류 상태라 신고하면 나만 손해다." 실제로는 다르다.
고용노동부는 체류자격 문제와 임금 문제를 따로 처리한다. 서류가 없어도 임금체불 진정을 막지는 않는다.
대법원 판례도 이 점을 뒷받침한다.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종속되어 근로를 제공했다면 다르다. 임금을 받아온 이상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한다. 일하다 다쳤을 때도 산업재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본 판례가 있다. 근로기준법 제6조도 있다. 국적을 이유로 한 근로조건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핵심은 체류자격이 아니라 근로의 실질이다. 실제로 일했다는 증거만 있으면 된다. 체류자격과 상관없이 임금 받을 권리는 그대로 살아 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참는 사람이 너무 많다.
◇ 돈을 못 받았을 때, 법은 이렇게 움직인다
임금체불이란 정해진 날짜에 임금을 못 받는 상황을 말한다. 일부만 받는 경우도 포함된다. 퇴사 후 14일 안에 퇴직금을 못 받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근로자가 쓸 수 있는 절차는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진정(고용노동부에 문제를 알려 조사를 요청하는 절차)이다. 고용노동부 노동포털에 온라인으로 접수한다. 사업장 관할 고용노동청을 방문해도 된다. 접수되면 근로감독관이 사업주에게 출석을 요구한다. 사실관계도 조사한다.
체불이 확인되면 사업주에게 시정지시가 내려간다. 사업주가 따르면 사건은 종결된다. 따르지 않으면 형사입건되어 검찰로 넘어간다. 임금체불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임금체불은 단순한 민사 문제가 아니다.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민사소송이다. 진정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검토한다. 사업주가 재산을 빼돌릴 우려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체불액이 명확하고 다툼이 없다면 확인서를 받을 수 있다. '체불 임금 등·사업주 확인서'라는 서류다.
이 확인서가 있으면 대지급금(근로복지공단이 사업주 대신 밀린 임금 일부를 먼저 지급하는 제도)을 이용할 수 있다. 진정 기준으로 신청하면 퇴직일 다음 날부터 1년 이내다. 소송 기준으로 신청하면 2년 이내다.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E-9, H-2 비자 근로자에게는 별도 안전장치도 있다. 사업주가 가입하는 임금체불 보증보험이다. 이를 통해 최대 4백만 원까지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 소송까지 가지 않아도 일정 금액을 돌려받을 길이 있는 셈이다.
◇ 사업장을 옮기고 싶은데 사장이 막는다면
E-9 비자 근로자는 사업장 변경 횟수에 제한이 있다. 최초 3년 취업 기간 중 3회를 넘길 수 없다. 재고용 기간 중에는 2회를 넘길 수 없다. 이 제한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겪고도 참는 근로자가 많다.
그러나 사업주 책임이 있는 경우는 다르다. 이 횟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월급의 30퍼센트 이상을 2개월 넘게 못 받은 경우가 그렇다. 10퍼센트 이상을 4개월 넘게 못 받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폭행이나 상습적인 폭언을 겪은 경우도 해당된다. 성희롱이나 불합리한 차별을 겪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업장의 휴업이나 폐업도 근로자 책임이 아닌 사유다. 고용허가 취소도 마찬가지다. 다치거나 아파서 원래 사업장에서 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일할 수 있다면 방법이 있다. 진단서만 제출하면 사업주 동의 없이도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핵심은 사장의 허락이 아니라 사유의 정당성이다. 사업주가 안 된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법이 정한 사유에 해당하면 신청할 수 있다. 관할 고용센터에 신청하면 된다. 증빙자료가 부족해도 방법은 있다. 고용센터가 직권으로 조사해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 해고를 당했다면, 먼저 볼 것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당했다면 노동위원회(해고 등 노동 분쟁을 심판하는 행정기관)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해고일로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해야 한다. 이 기간을 넘기면 구제받을 길이 사라진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다만 중요한 예외가 있다.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는 해고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작은 식당이나 소규모 공장에서 일한다면 다르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대상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보호를 전혀 못 받는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과 임금 지급 시기는 다르다. 체불 처벌 조항도 마찬가지다. 사업장 규모와 상관없이 그대로 적용된다. 30일 전 예고 없이 해고당했다면 해고예고수당도 청구할 수 있다.
핵심은 사업장 규모가 아니라 어떤 권리인지 구분하는 것이다. 해고 자체를 다툴 수 있는지는 사업장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밀린 돈을 받을 권리는 다르다. 규모와 무관하게 살아 있다.
◇ 협의로 끝낼 사안인가, 변호사가 필요한 사안인가
모든 노동 문제가 소송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금액이 크지 않다면 다르다. 사업주도 지급 의사가 있다면 진정 절차만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 단계는 공인노무사의 도움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변호사 선임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상황은 따로 있다. 체불 금액이 크고 사업주가 재산을 숨기려는 정황이 있을 때다. 폭행이나 성희롱처럼 형사 사건이 얽혀 있을 때도 그렇다. 사업장 변경과 임금체불, 부당해고가 동시에 걸려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안이 복잡할수록 그렇다.
진정에서 끝내지 않을 수도 있다. 형사고소로 압박하며 가압류(상대방이 돈을 빼돌리지 못하게 재산을 묶어두는 절차)까지 함께 진행하면 상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사업주 입장에서 부담의 크기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변호사가 개입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결과가 갈리는 부분이다.
비용 문제도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체불 당시 최근 3개월 평균 임금이 4백만 원 미만이면 방법이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무료로 소송대리를 받을 수 있다. 국번 없이 132번으로 상담을 예약하면 된다.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할 필요는 없다.
◇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미국은 H-2A, H-2B 비자로 외국인 노동자를 받는다. 비자와 숙소, 체류 자격이 모두 고용주 한 명에게 묶여 있다. 구조 자체는 한국의 E-9와 비슷하다. 그런데 2025년, 미국 노동부는 방향을 바꿨다. 근로자 보호를 강화한 규정의 시행을 오히려 중단했다. 보호 수준이 정치 상황에 따라 뒷걸음질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은 오랫동안 기능실습제도를 운영해 왔다. 이 제도는 전적, 즉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부당한 대우를 피할 방법이 도망 말고는 없었던 셈이다. 일본 법무성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실습생 9,753명이 실종됐다. 이 문제로 일본은 2027년부터 제도를 없앤다. 입국 첫날부터 노동자 신분을 인정하는 새 제도로 바꾸는 중이다.
중국은 농민공이라 불리는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이 오래된 문제다. 중국은 노동쟁의를 법원에 가기 전에 반드시 중재를 거치게 한다. 소액 임금 청구는 중재 단계에서 곧바로 확정한다. 이런 제도로 처리 속도를 높였다. 법률원조센터와 농민공 전용 상담 채널도 폭넓게 운영한다.
베트남은 접근 자체가 다르다. 외국인을 받기보다 자국민을 해외로 보내는 나라에 가깝다. 그래서 법의 초점이 출국 전 단계에 있다. 2020년 개정법은 송출 수수료를 없앴다. 빚에 묶인 채 해외로 나가는 구조를 줄이려는 취지다. 학대나 성희롱을 겪은 근로자에게는 권리가 있다. 위약금 없이 계약을 끝낼 권리다. 출국 전부터 착취의 고리를 끊으려는 접근이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에게 노동 특허를 발급한다. 이를 통해 취업을 허용한다. 다만 체계적인 무료 법률구조 인프라는 두텁지 않다. 2025년 이후로는 방향이 달라졌다. 이주노동자 단속과 추방 절차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이 움직였다. 국제 인권 기구들은 착취와 인신매매 문제를 계속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 제도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임금체불에 형사처벌을 둔다. 진정과 대지급금, 보증보험, 무료소송지원까지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갖췄다. 이 정도 장치는 국제적으로도 흔치 않다. 문제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 제도를 아는 사람이 적다는 데 있다.
◇ 오늘, 이번 주,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일
오늘 안에 할 일부터 정리한다.
1. 급여명세서, 근로계약서, 계좌이체 내역을 사진으로 남긴다.
2. 사장과 나눈 문자, 카카오톡 대화를 캡처해 따로 저장한다.
3. 외국인등록증과 여권 사본을 준비해둔다.
다음 며칠 안에 할 일은 이렇다.
1. 고용노동부 노동포털이나 관할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한다.
2. 고용센터나 외국인 지원센터의 통역 지원 여부를 확인한다.
3. 대한법률구조공단 132번으로 상담을 예약한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분명하다.
1. 증거 없이 구두로만 사장과 합의해버리는 것.
2. 화가 난다고 무단으로 사업장을 이탈하는 것. 오히려 불리한 기록이 남을 수 있다.
3. 감정에 휩쓸려 "제 잘못도 있다" 같은 진술을 남기는 것.
◇ 변호사가 들어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증거를 정리하는 방식부터 달라진다. 문자, 급여명세서, 출퇴근 기록이 있다. 계좌이체 내역도 있다. 이 중 무엇이 결정적 증거인지 가려낸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방향도 잡아준다.
절차를 고르는 기준도 명확해진다. 진정만으로 충분한 사안이 있다. 형사고소를 병행해야 할 사안도 있다. 가압류부터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잘못된 절차를 먼저 밟으면 시간과 비용만 늘어난다.
타이밍 판단도 중요하다. 지금 바로 신고할 단계인지 봐야 한다. 며칠 더 증거를 모아야 할 단계인지도 봐야 한다. 너무 서두르면 증거가 부족하다. 너무 늦추면 사업주가 재산을 정리해버릴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 실수를 막아준다. 상대방에게 먼저 연락해 증거를 없앨 빌미를 주는 실수가 있다. 감정적으로 합의서에 서명해버리는 실수도 있다. 불리한 진술을 남기는 실수도 있다. 이런 실수 하나가 이후 절차 전체를 어렵게 만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억울함을 참는 인내가 아니라, 기록을 남기는 행동이다.
한병철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 변호사
(대한변협 인증 형사전문변호사 · 부동산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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