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변호사 한병철의 글로벌 법률 가이드15] 본국의 약이, 한국에선 마약이 된다
◇ 국경을 넘으면 같은 약도 다른 법을 만난다
캐리어 속 익숙한 약봉지, 공항에서 다른 이름을 얻는다
유학을 앞둔 한 학생이 짐을 챙긴다. 오랫동안 먹어온 약도 함께 넣는다. 본국 병원에서 정식으로 처방받은 약이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치료제일 수도 있다. 불면증 때문에 먹는 CBD(칸나비디올, 대마에서 뽑아낸 성분) 오일일 수도 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짐이 엑스레이를 통과한다. 세관 직원이 가방을 다시 열어보자고 한다. 몇 분 전까지 평범한 유학생이었던 사람이, 어느새 마약수사대 조사실 의자에 앉아 있다.
이런 일은 드문 사고가 아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국경 단계에서 적발된 마약류는 767건, 1,007kg에 이른다. 특히 여행자를 통한 반입 적발이 크게 늘었고, 국내에 머무는 외국인과 외국인 근로자를 통한 유입도 늘어나는 추세다. 본국에서는 아무 문제 없던 약이,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범죄의 증거물로 바뀐다.

◇ 위험해서가 아니라, 분류가 달라서 문제가 된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착각한다. "성분이 안전하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이다. 실제로는 다르다. 한국 법은 성분의 위험성이 아니라, 그 성분을 어떻게 분류했는지로 처벌 여부를 정한다.
CBD가 대표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대마초의 어느 부위에서 뽑았든, THC(환각 성분)가 없다고 광고해도, CBD 오일은 원칙적으로 마약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한국 법에서 마약류가 아닌 것은 오직 껍질을 완전히 벗긴 대마 씨앗과 그 기름뿐이다. 홈쇼핑에서 파는 헴프씨드오일과, 해외 직구로 들여오는 CBD 오일은 전혀 다른 물건으로 취급된다.
ADHD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애더럴(암페타민 성분 치료제)은 미국에서 흔히 처방되지만, 한국에서는 향정신성의약품(뇌와 신경에 작용해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다. 국내에서 판매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본국 처방전이 있어도 그 자체로는 정당한 반입 사유가 되지 못한다. 졸피뎀, 디아제팜, 알프라졸람 같은 수면제·신경안정제 성분도 같은 이유로 마약류에 포함된다.
◇ 핵심은 그 약이 위험한지가 아니라, 한국 법이 그 성분을 어떻게 분류했는지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 반입승인이라는 절차
여기서 두 번째 착각이 등장한다. "그럼 아예 가져올 방법이 없다는 거냐"는 생각이다.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자가치료 목적의 마약류 반입승인 제도를 운영한다. 국적과 관계없이,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약이라면 사전 승인을 받아 휴대하고 입국할 수 있다.
항공권 사본과 의사의 진단서, 처방전을 갖추어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된다. 처리에는 통상 열흘 정도 걸리므로, 입국 예정일보다 최소 열흘 전에는 신청해야 한다.
다만 승인받은 양을 넘겨서는 안 된다. 국제우편이나 소포로 부치는 방법은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별도로 금지된다. 반드시 본인이 직접 휴대하고 입국해야 한다.
◇ 적발되면 이런 절차를 거친다
승인 없이 반입하다 걸리면, 절차는 이렇게 흘러간다. 세관에서 먼저 물품을 확인한다. 마약류 성분이 확인되면 사건은 경찰 마약수사대로 넘어간다. 이 단계에서 소변검사와 모발검사를 받는다. 간이시약검사를 먼저 하고, 필요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감정을 의뢰한다. 검사를 거부해도 영장을 받아 강제로 진행할 수 있다.
이후 진술 조사가 이어지고, 사건은 검찰로 넘어간다. 검찰은 사안에 따라 기소유예(재판 없이 사건을 끝내는 결정), 약식기소, 정식기소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약물에 대한 의존이 문제의 본질이라면,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교육이나 치료 이수를 조건으로 하는 기소유예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두 가지 권리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는 진술거부권(조사받을 때 말하지 않을 권리)이다. 다른 하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다. 한국어가 서툴다면 통역 지원을 요청할 권리도 있다. 조사 초반에 이를 분명히 밝혀두는 것이 좋다.
◇ 인정할 것인가, 부인할 것인가 - 이분법이 아니다
여기서 흔히 하는 착각이 하나 더 있다. "일단 다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면 된다"거나, 반대로 "끝까지 부인하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둘 다 위험하다.
핵심은 인정이냐 부인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정리한 뒤, 변호인과 함께 진술 방향을 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말로 몰랐다면, 그 사실을 뒷받침할 자료가 있어야 한다. 처방전, 진단서, 구매 이력, 반입승인을 신청했는지 여부 같은 것들이다.
반대로 명백한 사실을 근거 없이 부인하면, 오히려 수사를 방해하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실제로 대마초 흡연이 인정되는 상황에서도, 혐의를 무리하게 부인하기보다 정상참작 자료를 충실히 준비해 기소유예를 받은 사례가 있다.
◇ 다른 나라라면 어떻게 다를까
한국이 유난히 엄격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미국은 연방법상 대마초와 애더럴 같은 규제약물이 여전히 불법이다. 다만 주(state) 단위로는 기호용 대마를 합법화한 곳이 늘고 있다. 문제는 공항과 국경, 국립공원처럼 연방법이 적용되는 공간에서는 주법의 합법화가 소용없다는 점이다. 자국 안에서도 이렇게 공간에 따라 법이 갈리는데, 국경을 완전히 넘은 한국에서 미국 주법을 근거로 내세울 수는 없다.
일본은 한국만큼, 어떤 부분에서는 한국보다 더 엄격해지고 있다. 2024년 12월 개정된 대마단속법은 그동안 처벌하지 않던 대마초 "사용" 자체를 새로 범죄로 규정했다.
위반하면 최대 7년의 징역형이다. 해외에서 정식으로 처방받은 애더럴이라도, 일본은 반입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개정으로 CBD 성분 의약품의 의료 목적 활용은 오히려 넓혔다. 규제는 강화하면서 치료 목적의 문은 넓히는, 이중적인 흐름이다.
중국은 "마약이면 곧 사형"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단순히 사서 흡입하는 정도는 그렇게 무겁게 처벌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 형법은 아편 1kg, 헤로인이나 필로폰 50g 이상을 밀수·제조·판매하면 15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무기징역,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정한다.
실제로 필로폰을 판매 목적으로 소지했던 한국인이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된 사례도 있다. 기준은 "마약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얼마나 되는 양을, 어떤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느냐"다.
베트남은 세계에서 손꼽히게 엄격하다. 헤로인 600g, 필로폰 2.5kg 이상을 소지하거나 운반하면 외국인이라도 예외 없이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도 마약 밀매 혐의로 베트남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한국인들이 있었다.
러시아는 사형 제도는 없지만, 형량 자체가 매우 무겁다. 미국의 한 유명 여자프로농구 선수는 의료용 대마 오일이 든 카트리지를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9년형을 선고받았다.
짐을 급하게 싸다 실수로 넣었을 뿐 범죄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 법원은 그 사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본국에서 합법이라는 사실은 이 나라에서 안 통한다"는 태도가 뚜렷하다. 최근에는 외국인 마약사범의 러시아 시민권을 박탈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결국 어느 나라를 가든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순간, 그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다.
◇ 외국인이라면 형사처벌로 끝나지 않는다
외국인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더 남는다. 형사 절차가 끝나도 체류 자격 문제가 남는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석방된 사람은 강제퇴거 대상이 된다. 마약 범죄는 사안의 무게 때문에, 집행유예는 물론 기소유예나 벌금형을 받아도 출입국 심사에서 강제출국과 입국금지로 이어지는 경우가 실무상 적지 않다.
강제퇴거 여부는 법무부의 재량 처분이다. 체류 기간, 가족관계, 반성 정도, 재범 위험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그래서 형사 사건 대응과 출입국 행정 절차 대응을 함께 준비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변호사를 부르면 상황이 더 나빠질까봐, 또는 체류자격에 흠이 될까봐 주저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초기에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수록, 형사 절차와 출입국 절차 모두에서 선택지가 넓어진다.
◇ 오늘 할 일, 이번 주 안에 할 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
먼저 오늘 안에 할 일이다.
1. 처방전, 진단서, 구매 내역, 반입승인 신청 여부, 압수물 목록 같은 자료부터 정리한다.
2. 외국인등록증과 여권 등 신분을 증명할 서류를 챙겨둔다.
3. 무엇을, 언제, 어떻게 반입하거나 소지했는지 시간 순서대로 사실관계를 정리한다.
다음은 이번 주 안에 할 일이다.
1. 변호인과 상의해 진술 방향을 정한다.
2. 자가치료 목적이라면 반입승인 제도를 활용할 수 있었는지 점검한다.
3. 체류자격에 미칠 영향까지 함께 살핀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1. 압수 대상 물품을 버리거나 숨기지 않는다.
2. 변호인 없이 서둘러 진술서에 서명하지 않는다.
3. 감정적으로 전부 인정하거나, 무작정 부인하지 않는다.
◇ 변호사가 함께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증거 정리부터 다르다. 처방전과 진단서, 구매 이력, 반입승인 여부, 압수물 목록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데서 대응이 시작된다. 무엇이 유리한 자료이고, 무엇을 더 확보해야 하는지 변호인이 함께 짚어준다.
절차 선택도 달라진다. 형사 절차와 출입국 행정 절차는 각각 다른 논리로 움직인다. 두 절차를 동시에, 일관된 전략으로 준비할 수 있는지가 결과를 가른다.
타이밍 판단도 마찬가지다. 지금이 자료를 모으는 단계인지, 이미 조사가 임박해 즉각 대응이 필요한 단계인지부터 구분해야 한다. 이 판단이 늦어질수록 선택지는 줄어든다.
실수를 막는 것도 변호인의 역할이다. 혼자 판단해 성급하게 다 인정하거나, 명백한 사실을 무리하게 부인하거나, 압수 대상물을 손대는 실수를 곁에서 막아준다.
지금 필요한 건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사실을 뒷받침하는 서류다.
한병철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 변호사
(대한변협 인증 형사전문변호사 · 부동산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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